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윤미님의 치료 수기
작성자 : 진병원/W진병원(jinhospital@naver.com) 작성일 : 2022-07-18 조회수 : 3418

 

 

 

윤미님의 치료 수기

 

* W진병원에서 외래 진료를 받고 계시는 윤미님께서 직접 작성해주신 소중한 치료 수기 입니다.

* 본인의 정보 공개 동의 하에 수기 내용 및 성함은 공개 됩니다.

 

 

 

푸른 바다 속을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던 아이 하나가 있었다.

 

실컷 누비고 다녔다 싶으면 물 밖에 나왔다가 세상이 시끄럽다 느끼면 깊은 바닥까지 내려가

탁 치고 오면 다시 물 밖 세상으로 고개 쏘옥 내밀고 맑은 하늘과 시원한 바람을 맘껏 느끼던 아이가.

 

 

그런데 어느 날 아이는 위, 아래로 오가던 바다 중간 어디쯤에서 방향을 잃어 헤메고 있었다.

파랗다 못해 검게 보이는 그 어둠에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기력이 빠졌고 가려는 방향이 위인지 아래인지 옆인지 방향 감각도 없고

원하는 방향도 더 이상은 없는 것 같아 물살에 모든 걸 내 맡기고 놓아버리니

차라리 편하다고 느껴졌다.

 

 

그렇게 모든걸 포기하고 눈을 감으려는 찰나 저 멀리 희미하게 빛을 잃어가며 떠다니는 또 다른 어린아이가 보였다.

빛을 잃어가려는게 안타까워 사력을 다해 가까이 가보니 아이의 어린 아기였다.

그 순간 깨달았다. 아기를 살리려면 아이도 살아야 한다는 걸. . .

 

 

작년 봄 즈음 이었다.

오랜만에 통화한 지인과의 대화에서 과한 스트레스를 받았고, 그 일로 밤에 수면에 문제가 생겼다.

얕은 잠을 자고 있었던건지 자다깨기를 10분주기로 반복한 거지 알수 없었던 그날 밤이 새고

낮에 순간 순간 멍 해지면서 아이가 부르는 소리에 반응을 할 수 없게 되면서 

, 뭔가 문제가 생겼구나!!’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.

 

 

평소에 TV에 자주 나와 관심있게 지켜봤던 의사 선생님께서 진료하는 병원이 집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

선뜩 진료를 받아 볼 용기는 없었다.

 

심리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전문가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는 것이 당연한 사실이라 생각했었던 나라서

병원 접수를 망설이는 내가 낯설었다.

 

그래도 더 이상 손을 놓고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 잡고 전화 버튼을 눌렀다.

바로는 진료가 어렵고 예약을 해야 돼서 날짜를 잡고 기다렸다.

 

첫 진료가 있는 날 접수대에서 문진표를 작성 했는데 최근에 자주 드는 생각들 생활 패턴, 주변 상황 등에 대한 질문들이었다.

최대한 솔직하게 체크를 해나가는데 담당하신 간호사님께서 앞선 질문지들을 두 번, 세 번 훑어보며 표정이 심각해 지더니

얼마동안 이러고 지냈던 건지 물었고 대답을 하려 기억을 더듬어 보는 순간 내가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나의 패턴이라는 게 없이 지냈구나라는

생각이 드니 북받치는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며 주변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쏟아 지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.

 

 

그렇게 접수대에서 한 바탕 서럽게 울고는 의사를 만나 무슨 얘기부터 해야 할까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

대기실에서 호명을 기다렸다. 내 이름이 호명되고 진료실에 들어 가 앉았다.

내과나 소아과에서처럼 어떻게 진료를 오게 됐는지 물었고 대답하는 중간 중간 가족관계, 현재 처해있는 상황 등을 물어봤다.

왜 나의 얘기가 아닌 가족들 이야기난 상황이 궁금하고 내용에 따라 진지하게 차트에 기록 하는지 그때는 알 수 없었다.

 

 

두근거리고 긴장 했던 것 보다 편하게 상담시간이 끝나고 병원을 나서며 왠지 모르게 몸이 가뿐해 지고 발걸음이 가벼워 진 것 같았다.

그러면서 문득 내가 의사에게 어떤 얘기를 했는지 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까지 장황하게 한건 아닌지, 이런 문제로 힘들어 하는 나를

이상해 하지는 않을지 또 다른 불안함이 들어오려는 것 같았다.

 

그러다 너 뭐하니?


아파서 의사한테 도움 청하러 갔으면서! 전문가니까 이상해 보이면 이상한 대로 처방해 주겠지

그 이후는 의사에게 맡겨하고 생각하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.

 

 

첫 진료후에 약을 복용하며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침대가 늪이 되어 그 늪에 쓰윽 빨려들어가는 상상이 왜 자꾸 드는지,

원인모를 우울감이 왜 자꾸 불쑥 불쑥 찾아 오는지 스스로 찾아보려 애썼다.

 

가족과 주변 몰래 혼자 조용히 치료를 진행하느라 더 두근거리고 조심스러웠지만

매일 약을 복용하는 횟수가 누적되면서 행동과 생활에 변화가 스스로 느껴졌다.

식사후 별다른 의식없이 주변정리를 하고 양치를 하러 가기까지 머릿속 갈등 없이 큰 에너지 소모 없이 가능해졌고 그게 신기했다.

 

 

여지껏 내가 아파서 그랬던 거구나 인지가 되고 나니 상담과 약물치료에 더 적극적으로 꾸준 할 수 있었다.

치료 3개월쯤에는 남편과 친정엄마에게도 치료 사실을 털어 놓았다.

정신적으로 힘든건 마음 먹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강한 두 사람은 평소 정신과 치료에 부정적이었다.

 

그래서 더욱 더 치료를 시작하고 3개월 정도 스스로 변화를 경험, 인지하고 나서야 말을 꺼낼 수 있게 되었다.

 

 

특히 정신과 상담치료라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이 있는 남편에게는 얼마간의 언쟁, 다툼도 각오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.

그런데 비장한 각오가 스스로도 우스워질 정도로 남편은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내 얘기를 들어줬고

이해하고 공감해줬다.

 

 

내가 얼마 전부터 좀 달라진 걸 느끼고는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궁금했었다고 했다.

남편의 반응이 너무 고맙고 또 한편으로는 미안했다.

 

나와 지내며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 했었는데 마음이 아파서 그런 행동을 했었구나 라고

이해가 간다며 같이 보듬어 주고 너무 늦지 않게 판단 잘 해서 치료 결심을 했다며 격려하고 꾸준한 치료를 응원했다.

 

 

친정엄마 역시 애들 키우는데 엄마인 네가 무엇보다 심적, 신체적으로 건강해야 한다며 잘 생각하고 실천했다고 칭찬하시고 응원해 주셨다.

여기까지 오고 나니 이제 앞으로 나만 꾸준히 치료를 잘 받으면 되겠다는 생각에 힘이 생겼다.

 

 

그렇게 1년이 흐르고 나는 여전히 약을 복용하고 상담도 하고, 아주 가끔, 정말 아주 가끔 우울감이 찾아 오기도 한다.

 

 

그렇지만 더 이상 죽음만이 내가 가진 고통의 돌파구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.

한 번에 한 가지도 하기 힘들어 일상생활에 어려움도 많이 사라지고 있다.

나도 치료를 받아 좋아 질 수 있다는 경험과 인지가 또 다시 치료를 진행 할 수 있는 동기가 됐다.

 

 

어느 정신과 선생님께서 유투브 영상에서 우울증, 공황장애 같은 것이 마음의 병인건 알겠는데

마음이라는게 뇌안에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니까 의지로 해결 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.

 

 

, 콧물 재채기가 심한데 의지로 안 나오게 참아야지 하면 콧물 재채기가 나오지 않느냐고도 했다.

 

아프면 병원에 가서 맞는 진단을 받고 맞는 치료를 받는 게 옳은 방향이라는 믿음이 더 굳건해졌다.

우리사회도 정신과 치료, 정신과 약 복용에 부정적인 생각이 더 큰 문제라는 의식을 가지고

많은 사람들이 제 때 마음치료를 잘 받았으면 좋겠다.

 

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본인 스스로를 위해 선택하고 다시 태어나는 것 같은 새로운 삶을 경험해 봤으면 좋겠다.

바다 속에서 방황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 안타까워 손 내밀어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처럼

본인 스스로에게도 손을 내밀어 보는 시도를 해보면 좋겠다. 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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